저희 중국유학사를 통해서 홍콩중문대학 어학연수에 참여하셨던 김민진학생의 홍콩중문대학 어학연수 관련 수기가 한국장학재단 웹진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 홍콩중문대학 어학연수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혹은 홍콩에서의 어학연수를 고려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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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경쟁의 시대’라는 말은 수사적 표현에 그치는 말이 아니었다. 취업전쟁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내 주변 친구들은 매일매일 도서관에서 취업의 관문을 뚫기 위한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압박감만 있었을 뿐, 다른 친구들처럼 학과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 투자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가족에게 중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갔다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았다. 특별한 생각이 없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그래!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라도 찾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가겠다고 말씀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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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jpg 어학연수를 가게 되는 것이 결정되어 들뜨는 것도 잠시, 문득 전에 갔던 중국 여행이 떠올랐다. 상해에 갔을 당시, 중국인들은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이드 아저씨가 곁에 없을 때엔 슈퍼에서 물건 하나도 제대로 사는 것이 벅찬 일이었다. 또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중국에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가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가려고 생각하니 ‘과연 중국어라고는 몇 번 들어본 적도 없는 내가 혼자 그곳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 중국 본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언니에게 ‘홍콩으로 가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들었다. 홍콩은 여행으로도 편히 가는 나라인데다가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지 14년밖에(작년 기준으로) 안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은 영어가 능숙하다고 했다. 게다가 중국 본토와 달리 내가 살던 한국과 비슷한 체계를 가진 나라이고, 치안예방도 잘 되어있다고 했다. 그래서 홍콩으로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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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jpg 처음 중국 어학연수를 가기로 했을 때처럼, 다시 한 번 ‘홍콩’이라는 정확한 목적지를 결정하고 나니 더더욱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홍콩에 가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설레어 당장 인터넷에서 홍콩 대학교와 연결해주는 ‘중국유학사’라는 곳을 찾았다. 홍콩으로의 어학연수를 주선해주는 유학사는 단 한 곳. 중국 유학사뿐 이었다.

 

이때는 이미 8월 초였는데 유학사에 따르면 비자가 나오기까지는 통상적으로 3~6주가 걸리고 비자가 나오기 전에는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유학사에서는 최대한 빨리 비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서류가 늦어지면 퇴근 시간이 넘어서도 기다려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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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어학연수를 다녀오겠다고 인사도 하지 못하고 출국 전날이 다가왔다. 친구들에게 급하게 단체문자로 어학연수 간다고, 돌아오면 보자는 메시지만 남긴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족들은 모두 바빴기 때문에 나 혼자 출국을 해야 했고, 홍콩에 도착해서도 모든 일을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사실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땅에서 혼자 헤쳐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일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만 엄마로부터 현금이 필요할 때 쓰라며 받은 1,000달러(홍콩)짜리 지폐 10장과 간단히 챙긴 짐만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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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집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홍콩은 땅은 작은데 그 위에 서울의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 주택난이 매우 심하다. 부동산에서는 위치도 나쁘고 크기는 방 2개와 거실, 화장실까지 합쳐도 한국에 있는 내 방만할 듯한 작은 집을 9,000달러에 계약하라고 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홍콩에 거주하시는 한국 분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그분과 처음 부동산을 찾았을 때, 우리에게 처음 보여준 방은 내가 지금껏 본 집들보다 위치도 좋으며, 가격도 비교적 저렴했고 크기도 컸다. 단번에 계약하긴 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그 언어를 쓰는 사회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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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jpg 중문대학교에서의 학기가 시작한 첫날.


중국어의 가장 기본인 성조와 핀인(발음을 알파벳으로 적은 것)을 읽는 수업을 했다. 그 와중에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 그리고 한국인은 없는지 찾아보기에 급급했다. 아쉽게도 우리 반 15명 중에 한국인은 나를 제외하고 단 1명이었고 그마저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이 들어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내게 처음으로 다가와 준 것은 5명의 일본인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학교 내 또는 방과 후에도 늘 함께하게 되었으나, 공교롭게도 그 친구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나는 영어를 고등학교 때까지 교과 과정으로 배운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정도였다. 그래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구경을 가도, 늘 혼자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신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잠깐 일어를 공부한 것을 토대로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일본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들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거의 중국어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일본어 수업을 다시 받는 것과 같았다.

 

한편, 중국어는 생각보다 빨리 늘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한국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던 방식과 달리 ‘듣고 말하는 시간’이 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단어를 물어봐 내가 아는 문장에 대입하면서 점점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문법을 먼저 배우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듣고 말하고 느끼고 소통하는 것이었다. 중국어뿐 아니라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사용하는 일본어와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다른 언어들이 섞여 나오는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어느새 그런 문제는 사라졌다.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나에게 그 언어들은 통역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그 언어 자체가 되어 갔고, 더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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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가까워질수록 언어와도 가까워졌고,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때로는 침사추이에서 관광객처럼 ‘레이저 쇼’를 관람하러 가기도 했고, 맛집을 찾아 다니며, 여러 음식을 시켜놓고 나누어 먹으며 미식가인양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금요일 밤이면 10박스짜리 병 맥주를 찾아 완차이에 갔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언어 구사가 더 자연스러워져, 적당한 술은 오히려 언어를 익힘에 있어 좋은 역할을 했다. 한편, 완차이 센트럴쪽은 외국인이 정말 많은 장소라 새로운 외국인들을 만나 내 언어능력을 테스트해보기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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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학재단 웹진
http://webzine.kosaf.go.kr/vol11/dreg/dreg_4.html


중국유학사 드림
China Educ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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